몸으로 지구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지구가 님 몸에게 전화했다던데, 연락 받으셨나요?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해 몸은 어떤지, 아직 지구에 살고 있긴 한 건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몇 번을 전화했는데 응답도 없고 자꾸 부재중이더래요.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멘트도 다 외웠다고.😢
님은 스스로가 지구인이라는 걸 어떻게 아시나요?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다'고 교육 받아서 당연히 그렇겠지, 생각하는 거 말고요. 정말 내가 지구에 사는 생명으로서 느끼는 게 있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삶에서 숨쉬고 맞닿는 모든 물건과 환경이 인공물이라서 지구에서 사는 삶이 정말 맞는지 느끼기도 믿기도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여기저기 번쩍번쩍, 삭막한 느낌에 인간, 상품, 차, 건물이 바글바글해 현기증이 나기도 하고요. 살아있는 자연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박제되고 통제된 '초록 전시물' 취급하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이제는 한숨을 넘어 탄식을 자아냅니다.
변화의월담이 매주 경싫체('경쟁체육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체육'을 아이들이 줄여서 부르는 말) 수업을 하고 있는 성미산학교 주변에는 성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는데요, 동네의 유일한 산을 마포구청에서 주민과 합의도 없이 깎고 덮고 쑤셔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과 개들이 거닐던 자연 흙길과 터들을 파괴한 곳에 나무 데크와 계단, 운동시설이 들어섰습니다. 불시에 시작된 공사에 놀란 시민들이 연대해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언제 이 '공원 조성' 공사가 철회될지 모르겠습니다. 공사 공식 명칭을 '무장애숲길 조성사업'이라 붙였던데, 요즘 토건 사업은 하다못해 인권 코스프레까지 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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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을 데크길로 조성하는 갑작스런 공사에 저항하는 시민들 ⓒ서울환경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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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몸이 소리내어 신음합니다. "끄어아어악..!"
콘크리트 거대괴물과 네온 사인으로 덮은 정글에서 사는 게 쉽지 않아서요. 몸부림치는 힘겨움을 넷플릭스와 SNS로 잠재우지 않기로 결정한 날은 신음과 절규의 밤이 되곤 합니다. 사실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 어느 행성에 인간이 설계한 문명이었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도 파란 하늘, 구름, 바다 다 감쪽같이 세트장으로 만든 거였잖아요. 가끔은 내 삶도 트루먼쇼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구도 삶의 근원이자 터전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지구와 단지 지금의 삶을 누리기 위한 수단, '소비하는 플랫폼'으로밖에 관계맺고 있진 않은지 직면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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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여지는 세상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We accept the reality of the world with which we are presented. - <트루먼 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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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무것도 안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의문 가져 본적 있으신가요?
의식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공부하는 기계, 일하는 기계가 되는 게 목표인 현 시스템에서 더더욱) 느낌을 억누르게 되면 살려달라고 몸이 아우성치기 때문입니다. 삶의 에너지는 '느끼는 것'에서 나옵니다. 기분 좋고 힐링하는 느낌뿐만 아니라 불편함, 거부감, 슬픔, 화와 같이 우리가 자칫 '부정적'이라며, 평온을 깨뜨린다며 터부시하는 느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과 함께 잘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거지, 억눌러야 하는 게 아닙니다. 눈으로만 보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나날이 쌓일 수록, 시간에 쫓겨 다니며 얕아지는 내 숨결조차 안 느껴지는 날들이 거듭될수록, 즉, 몸의 감각이 죽어갈수록 우리는 생명력의 원천인 지구로부터 멀어집니다.
🌿 몸은 기계가 아니다
몸은 온오프 스위치가 있고, 명령하는 대로 기능을 수행하고, 연료 공급만 잘 되면 어느 곳에 고립시켜도 잘 작동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식물에 가깝습니다. 어떤 토양에 사느냐, 어떤 숲, 물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냐가 삶의 핵심이고요. 햇볕, 바람, 물, 다른 동식물, 미생물, 무기물 등 주변 생태계와 상호작용해야 (나이 상관없이) 잘 자랍니다. 식물처럼 포도당과 산소를 만드는 식의 광합성은 하지 않더라도, 비타민 D, 멜라토닌 호르몬 등을 만드는 식의 광합성은 합니다. 자연과 목적없이, 욕심없이 맞닿을 때 구체적으로 다 알지 못해도, 여느 지구 생명처럼 우리 몸도 균형과 회복, 즉 살아나는 과정을 거칩니다.
죽을 고비에 와닿아서야 자연과 맞닿아 사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 전에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는 그 혼란스러운 여정에서 어떤 물음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길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자연과 '비생산적인', '탈성취적인' 만남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질감과 지형을 지닌 지구의 피부(땅)도 발로 느껴보고, 상상을 초월하는 네트워크를 이루며 서로 시끌벅적 소통한다는 나무의 뿌리도 느껴보고, 해와 달이 이동할 때 세상의 기운이 어떻게 묘하게 바뀌는지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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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가장 핵심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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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끼는 시간'의 회복
화면에 시야를 가둬둔 채로 걷는다던가, 5, 10키로 목표를 설정한 앱을 키고 뛴다던가, 몇 키로 코스로 정상을 찍으러 산행을 간다던가 하는 무감각한 시간은 멈추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려고 움직이는 활동이 성취의 프레임 속에서 여전히 감각을 죽이고 있다면, 목표는 내려놓고 느낌을 더욱 들여오는 방식으로 다시 꾸려보면 좋겠습니다. 걸음 수, 이동 거리, 시간은 결국 삶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그런 수치들이 중요할까요? 움직이는 과정에서 몸에 남은 느낌들, 나무, 새, 바람과 쌓은 관계는요? 느낌의 영역을 성취와 측정 도구들로 채우는 순간, 지구에 희망은 없습니다. 위기감에 이 세상의 탄소를 다 잡아오더라도 우리에게 지키고 싶고, 되살리고, 살고 싶은 지구는 지금도, 미래에도 없습니다. 그냥 죽지 못해 살고, 소멸할 날을 기다리며 나이 드는 행성에서 죽지 못해 사는 인간들이 남지 않을까요.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가 뭐냐 물으면, 변화의월담은 '느끼는 시간'의 회복이라 하고 싶습니다. 억눌러지고 마비된 감각의 회복. 잘개 쪼개다 못해 갈아져버린 시간의 회복. 느끼는 게 허용되고 장려된다면, 몸으로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삶에서 사회에서 늘어난다면, 우리는 깨닫게 될 겁니다. 우리가 결국 찾아야 하는 것은 탄소를 잡는 기술을 넘어, 지구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요.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고 지키고 싶은 마음, 그 마음으로 지구와 새로 관계 맺는다면, 우리는 위기를 기회가 아닌, 위기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진정 생태계를 살리는 길을 찾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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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레터에서 못다한 소식 전할게요
지구와의 진심어린 관계 없이는 건강이건 돌봄이건, 몸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암울하고 공허하여 그 생각을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글로 풀어봤습니다. 원래는 '지구와 다시 연결되는 것 (Reconnected to the Earth)'을 목표로 👟'베어풋 슈즈(맨발로 걷는 듯한 느낌을 주며, 우리 발의 본 구조와 능력을 리스펙트하여 디자인한 신발) 슈즈'를 개발하고 수선해서 다시 파는 멋진 브랜드 'REVIVO'을 소개하려 했는데요. 🙋♀️ 4월에 뜨겁게 몸으로 만난 전주성폭력상담소 크루들 이야기, 5월부터 여는 '신체감수성이 살아숨쉬는 운동장' 기획에 대해서도요. 이번 글짓기가 너무 힘겨웠어서 잠시 쉬면서 지구와 연결하는 시간 가지고, 조만간 다음 레터에서 소식 전할게요.
아, 내일 변화의월담과 함께 지구와 연결하는 시간이 궁금한 분들은 <놀이클리닉>에서 만나요. 이번 놀이클리닉부터는 새로운 가격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월담레터 구독자에게는 10% 할인을, 그 중 세상에 빛이 되는 활동가들에게는 20% 할인을 드립니다. 변화의월담이 시민과 공익의 편에서 든든한 몸살림지대로 자리매김해갈 수 있도록 실험과 활동 꾸준히 이어갈게요.
글과 씨름하느라 이번 소식이 늦어졌지만, 연이 된다면 꼭 몸으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5월 클리닉 상세 페이지와 4월 클리닉의 소중한 기록 공유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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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님이 보내주시는 메세지가 지난하게 글을 짓는저희에게 따뜻한 열기와 건강한 압력이 되어준다는 것,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레터를 읽고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이 있다면 주저말고 들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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